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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27일, 인천지방법원 형사9단독 정희영 판사는 피해자에게 전화를 ‘걸었더라도’ 피해자가 전화를 ‘받지 않았으니’ 스토킹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스토킹 가해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2022고단5049). 전화기 벨소리는 상대방에게 송신된 음향이 아니라는 2005년도의 대법원 판례(2004도7615)에 따라, 통화하지 않았으니 음향을 송신한 것이 아니며, 부재중 전화 표시는 휴대전화 자체 기능일 뿐 피해자에게 도달하게 한 부호가 아니라는 것이다.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스토킹처벌법)이 시행된 지 1년도 더 지난 현 시점에, 무려 17년 전의 대법원 판례를 빌어 이해할 수 없는 판결을 내린 판사의 자질이 의심된다.

 

보고도 믿기지 않는 이 같은 판결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6월 서울남부지방법원(2022고단883)은 피해자가 스토킹 가해자의 전화를 수신 거부 및 차단하였다는 이유로, 지난 9월 제주지방법원(2022고단814)은 피해자가 이틀 동안 26차례 걸려온 가해자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가해자들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현행 스토킹처벌법에 따르면,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여 지속적 또는 반복적으로 우편ㆍ전화ㆍ팩스 또는 정보통신망을 이용하여 물건이나 글ㆍ말ㆍ부호ㆍ음향ㆍ그림ㆍ영상ㆍ화상을 도달하게 하는 행위를 스토킹 범죄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몇몇’의 판사들은, 이토록 명백한 가해자들의 스토킹 범죄를 ‘피해자에게 음향을 보냈다고 할 수 없다’라며 무죄라 판결한 것이다.

 

실제 상담 현장에서 만나는 스토킹 범죄 피해자들은 전화를 받고 말고의 여부와는 상관없이, 울리는 전화 벨소리만 들어도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호소한다. 그런데 사법기관은 가해자의 전화를 받지 않으면 스토킹이 아니라고 한다. 어째서 판사들은 스토킹에 대한 정의가 존재하지도 않았던 17년 전의 대법원 판례에 매몰되어 현실과 한참 동떨어진 판결을 하고 있는가? 이러한 판결들은 사법기관이 스토킹 범죄에 대해 얼마나 무지한지, 피해자가 어떤 고통을 느끼고 어떤 영향을 받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다고 말하는 듯 보인다. 사법기관은 더 이상 피해자의 두려움과 공포를 외면하지 말라. 과거의 판례에만 매달려 현실과 동떨어진 판단을 하는 것에 부끄러움을 느끼고, 성인지적 관점을 바탕으로 상식적인 판결을 하라.

 

지난 4월 발의된 「스토킹 피해자 보호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스토킹피해자보호법)에 대한 공청회가, 늦어도 한참 늦은 오는 11월 17일에 열린다. 스토킹피해자보호법의 주요 골자 중 하나는 스토킹 피해자 지원기관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보수교육을 하는 것인데, 어째서 판사들은 보수교육의 대상에서 제외되었는가? 현 상황에서 누구보다 보수교육이 필요한 것은 판사를 비롯한 수사사법기관 종사자들이다. 국가가 진정 스토킹 피해자들의 인권을 보장하고자 한다면, 가장 먼저 이들을 보수교육 대상자에 포함하고, 스토킹피해자보호법 제정에 박차를 가하라.

 

* 관련기사: https://vo.la/DkboAL

* 한국여성의전화 논평 2022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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