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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월 11일, 헌법재판소가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여성들의 오랜 투쟁 끝에 만들어진 헌법재판소의 역사적인 결정은 마땅히 안전한 임신중지 권리 보장을 위한 체계를 만드는 시작점이어야 했다. 그러나 3년이 지난 지금도 정부와 국회의 방관 속에서 여성은 정보 부족, 의료기관으로부터의 거부, 의약품에 의한 임신중절 불가 등으로 임신중절에 대한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재생산권이 침해당하고 있다.

 

낙태죄 헌법불합치 이후, 낙태죄 보완 입법의 부재와 모자보건법 임신중절 수술 제한 조항의 미개정으로 여성들은 임신중절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현재 국회 상임위원회에는 낙태죄 조항을 완전히 폐지하는 안을 비롯하여 6개의 안이 계류 중이다. 행정부도 다르지 않다. 2019년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보건복지부 의료정책관이 ‘보완입법 없이는 임신중지에 대한 별도의 가이드라인을 제공하기 어렵다’고 밝힌 것은 법률의 부재를 핑계로 여성의 임신중지 권리에 대한 책임 회피일 뿐이다. 이렇듯 국가의 무책임, 무관심 속에 여성들의 재생산권 보장은 요원한 상황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발표한 ‘2021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에 따르면, 임신중절을 원하던 여성들은 수술비용, 수술 의료기관, 수술 부작용 및 후유증 등의 정보가 필요했었다고 답했지만, 46.9%는 인공임신중절 정보를 (국가 및 전문기관을 통한 공식적 경로가 아니라) 인터넷 게시물 등을 통해 얻었다고 응답했다. 안전한 임신중지 의료서비스 접근권이나 의료보험 보장은커녕 기본적인 정보 제공조차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한편, 낙태죄 폐지라는 변화가 의료 현장에서 제대로 적용되지 않는 것도 문제다. 한 언론사의 취재에 따르면 의료기관 10곳 중 8곳은 상담조차 거절했고, 일부는 ‘아기 아빠’의 동의를 요구하며, 수술 시 발생하는 모든 위험을 여성의 책임으로 전가하는 등 법률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거나 보수적인 태도를 취하였다. 이러한 의료기관의 태도는 낙태죄 폐지의 목적과 취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조치이자, 낙태죄 폐지를 사실상 무용지물로 만드는 처사이다.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의 ‘2021 임신중지 경험 설문·실태조사 및 심층인터뷰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실제로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후 당사자들은 심리적인 위안을 얻었지만, 의료기관의 임신중절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이 변화되지 않았음을 느꼈다고 한다. 정부와 국회가 각자의 책임을 회피하며 시간을 보내는 사이, 여성들은 75개 국가에서 이미 합법적으로 유통되는 유산유도제조차 사용하지 못하고, 적절한 의료서비스에 접근하지 못해 발생하는 부작용을 홀로 감내하고 있다. 

 

성적 자기결정권, 재생산권에 대한 보편적 접근과 제도적 수용을 보장하는 것은 국제적 기준이자 상식이다. UN은 경제적, 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에 따라 성과 재생산 건강과 관련된 정보 및 서비스에 대한 접근가능성과 구매가능성, 수용가능성뿐 아니라 양질의 서비스가 제공될 수 있도록 보장되어야 한다고 권고하였고, 당사국의 의무로서 성과 재생산 건강권이 완전히 실현될 수 있도록 신속하고 합리적으로 진행해야 한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는 아직까지도 제대로 된 임신중지 권리 보장이 이뤄지지 않았다. 6월 24일 미국이 임신중지권을 보장하던 판결을 폐지한 것과 같이 후퇴하지 않으려면 국회와 정부는 법제도 개선을 통해 유산유도제의 공적 도입, 임신중지 관련 의료행위 보장제도 마련, 편견 없는 의료행위 제공을 위한 의료인 교육 및 훈련, 임신중지로 인한 차별과 사회적 낙인 해소 등을 추진해야 한다. 국민을 위해 일한다는 국회와 정부는 여성들이 외쳐왔던 투쟁의 목소리를 잊어선 안된다. 여성시민들은 누구나 안전하게 임신과 출산을 결정할 수 있는 사회가 될 때까지, 지금까지 그래왔듯 계속해서 싸울 것이다.

 

* 당신과 함께하는 기억의 화요일 ‘화요논평’ 2022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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